2026-08-20 · 8분 읽기
※ 이 글은 창작 소설입니다. 1화 · 2화 · 3화 · 4화 · 5화 · 6화 · 7화 · 8화 · 9화 · 10화 · 11화
접수 절차는 간단하다.
품명, 습득 일시, 습득 장소, 습득자 정보. 네 칸을 채우면 번호가 나온다. 번호가 나오면 전산에 올라가고, 전산에 올라가면 조회가 된다.
3년 동안 나는 이 네 칸을 채우지 않았다.
나는 뒤에서부터 채웠다.
습득자 정보 칸에 내 이름을 적었다. 이건 거짓말이 아니다. 그날 나는 그것을 주웠다. 내 손에서 내 손으로 옮긴 것뿐이지만, 놓아둔 사람과 집어 든 사람이 같아도 습득은 습득이다.
보상금 청구란에는 포기라고 적었다. 정민석 씨처럼.
습득 장소 칸.
여기서 한참 멈췄다.
3년 전 그날, 나는 4호선을 세 번 왕복했다. 두고 내리려다 못 내렸고, 결국 역을 나와서 비를 맞으며 걸었다.
그러니까 정확히 쓰면 이렇게 된다.
4호선 열차 내.
나는 그렇게 적었다. 내가 그날 두고 내리지 못한 자리.
습득 일시 칸에는 3년 전 11월 그날의 날짜를 적었다.
접수일이 아니라 습득일이다. 규정상 습득한 날을 적는 게 맞다.
그러니까 이 물건은 3년 전에 습득되어 오늘 접수된 것이 된다. 3년이 비는 셈이지만, 그건 서류상 문제일 뿐이다.
내가 3년 동안 신고를 안 한 것이다. 그것도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품명 칸이 남았다.
3년 동안 비어 있던 칸.
나는 볼펜을 쥐고 한참 있었다.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할지 3년 동안 몰랐다. 아니, 몰랐던 게 아니다. 부르고 싶지 않았다.
이름을 붙이면 그건 물건이 된다. 물건이 되면 목록에 오르고, 목록에 오르면 6개월 뒤에 처분된다.
그런데 이름을 붙이지 않으면 아무도 찾을 수 없다.
3년 전 그 사람이 여기까지 와서 못 찾은 이유가 그거다. 내가 이름을 안 붙였기 때문에. 조회할 게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 사람을 원망한 적이 없다. 원망할 자격도 없었다. 나는 이걸 찾을 수 없는 상태로 만들어놓고 3년을 기다린 사람이다.
기다린 게 아니라 막아놓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품명 칸에 그것의 이름을 적었다.
적고 나니까 별것 아니었다. 3년 동안 못 적은 것이 3초 만에 적혔다.
번호가 나왔다. 제2026-1104호.
전산에 올렸다. 화면에 접수 완료 표시가 떴다. 만료일이 자동으로 계산돼서 옆 칸에 찍혔다.
만료일: 2027년 4월 30일.
6개월 뒤.
그날부터 6개월이 시작됐다.
만료일까지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처분된다. 그게 규정이고, 나는 그 규정을 지키는 사람이다.
이제 이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내가 매달 보류 연장을 적어서 붙잡아둘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전산에 올라간 물건은 전산이 관리한다.
나는 이제 이걸 못 지킨다.
동시에, 이제 조회가 된다. 유실물 통합 조회 사이트에 품명을 넣으면 나온다. 어느 역 보관소에 있는지, 언제까지 있는지.
그 사람이 다시 온다면, 이번엔 찾을 수 있다.
전산에 올리고 나서 한참 뒤에 알았다.
그 사람은 3년 전에 여기 왔을 때 물건 설명을 못 했다. 박 주임님이 그렇게 말했다. 어디서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고, 뭘 찾는지도 설명을 못 하더라고.
그런 사람이 품명으로 검색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적은 이름을 그 사람이 똑같이 떠올릴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건 내가 부르는 이름이지 그 사람이 부르는 이름이 아닐 텐데.
나는 화면을 오래 봤다.
이건 그 사람을 위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3년 동안 나는 이걸 막아놓고 기다렸다고 생각했다. 이제 열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열어놓은 문이 그 사람이 열 수 있는 문인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내가 한 건 어쩌면 그냥 끝낼 방법을 찾은 것이다. 6개월이라는 기한을 붙여서, 그 뒤로는 내 손을 떠나게 만드는 방법.
그걸 개방이라고 부르고 싶었을 뿐이다.
가을에 나는 열쇠 이름표를 잘못 읽었다. 남의 사정에 내 사정을 비춰 보고는 다 안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도 틀렸을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엔 틀린 채로 가기로 했다.
3년 동안 안 틀리려고 아무것도 안 했으니까.
점검이 왔다.
본사에서 두 명이 나와서 캐비닛을 열고 하나씩 대조했다. 접수 번호를 부르면 확인하고, 대장과 맞춰보고.
"제2026-1104호."
"…있습니다."
"품명 확인."
나는 품명을 말했다.
내 목소리로 그것을 발음한 건 3년 만에 처음이었다.
"확인됐습니다. 다음."
그게 다였다.
3년 동안 무서워했던 일이 삼십 초 만에 지나갔다.
점검이 끝나고 박 주임님이 대장을 봤다.
한참 보다가 아무 말도 안 하고 덮었다.
그러다 저녁에 퇴근하면서 한마디 했다.
"글씨 예쁘게 썼네."
"…"
"3년 만에 쓴 거치고는."
나는 웃었다.
"주임님."
"응."
"그때 그 사람 왔을 때요."
"응."
"어떻게 생겼었어요?"
박 주임님이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기억 안 나."
"…"
"3년 전이잖아. 하루에 사람이 몇인데."
11월이 지나고 12월이 됐다.
김승호 씨는 안 온다. 목요일에도 안 온다.
여학생은 한 번 왔다. 다른 책을 들고 와서, 이건 자기가 산 거라고 했다. 읽을 데가 마땅치 않아서 왔다고. 나는 저쪽 의자를 가리켰다.
정민석 씨는 안 온다. 그런데 12월에 지갑 하나가 접수됐는데, 습득자 이름이 그 사람이었다. 대전에서 올라오는 길에 4호선에서 주웠다고 적혀 있었다.
보상금 청구란에는 포기 표시가 있었다.
나는 이제 대장 맨 뒤 페이지를 펴지 않는다.
펼 이유가 없다. 보류 연장을 적을 물건이 없으니까.
대신 매달 처분 예정 목록을 뽑는다. 만료가 가까운 물건들이 자동으로 뜬다.
12월 목록에 제2026-1104호는 없었다. 아직 넉 달 남았으니까.
1월 목록에도 없었다.
2월 목록에도 없었다.
3월 목록에 처음으로 떴다. 만료 한 달 전 물건은 미리 뜬다.
나는 그 줄을 오래 봤다.
만료일이 다가온다.
주인은 아직 안 왔다.
나는 매일 출근해서 조회 기록을 확인한다. 유실물 통합 조회 사이트에서 누가 검색했는지는 안 나온다.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런데도 매일 본다.
3년 동안 매주 창구 앞에 서서 있냐고 물었던 것처럼, 나는 지금 매일 화면 앞에 앉아서 같은 걸 하고 있다.
달라진 게 있다면 끝나는 날이 정해져 있다는 것뿐이다.
그것만으로도 다르다고, 나는 생각하기로 했다.
4월 30일이 되면 이건 처분된다.
그러면 나는 그날 무슨 생각을 할까.
3년 전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버리면 그 사람이 없어진다고. 그래서 못 버렸다고.
지금은 다르게 생각한다.
내가 버리는 게 아니다. 규정이 처분하는 것이다.
그 문이 그 사람이 열 수 있는 문인지는 여전히 모른다. 아마 아닐 것이다. 그래도 3년 동안은 문 자체가 없었다.
내가 막아놓고 기다린 3년과, 열어놓고 기다린 6개월은 다르다.
적어도 나한테는 다르다. 그 사람한테도 다른지는 내가 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3년 동안 나는 그걸 내가 정하려고 했다.
어제 우산 하나가 들어왔다.
검은 장우산, 나무 손잡이. 4호선 승강장 벤치에서 습득.
손잡이에 메모가 붙어 있었다.
필요하신 분 가져가세요.
나는 그걸 접수하지 않고 다시 벤치에 가져다 놓았다.
이건 분실물이 아니니까.
「분실물 보관소」 완결
1화부터 12화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 소설은 창작이며, 등장하는 인물·장소·사건은 모두 지어낸 것입니다. 실제 유실물 처리 규정은 기관마다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