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16 · 5분 읽기
※ 이 글은 창작 소설입니다. 1화 · 2화 · 3화 · 4화 · 5화 · 6화 · 7화
이번엔 내가 쓴다.
박정숙. 이 보관소에서 열한 해 일했다. 오전 담당이고, 저 친구가 오후에 나온다.
저 친구가 뭘 쓰고 있는 건 안다. 근무일지 쓰는 척하면서 딴 걸 적더라. 언젠가 흘려보고 안 본 척했다. 남의 일기 들여다보는 건 예의가 아니니까.
그런데 요즘 하는 걸 보니, 자기 이야기는 안 쓰고 남의 이야기만 쓰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 한 번만 내가 쓴다.
11월이었다. 비가 왔다.
여섯 시쯤이었나. 셔터 내리려는데 젊은 여자가 들어왔다. 우산도 없이. 머리며 어깨며 다 젖어서.
"저기, 이거 좀 맡아주시면 안 될까요."
손에 뭘 들고 있었다. 나는 접수 대장을 폈다.
"어디서 습득하셨어요?"
"…제 거예요."
나는 볼펜을 놓았다.
"본인 물건은 분실물이 아니에요."
"…"
"두고 가시려면 접수는 안 돼요. 그냥 놓고 가시는 거지."
그 애가 한참 서 있었다. 그러다 그걸 창구에 놓고 나갔다. 아무 말도 없이.
나는 그걸 캐비닛 맨 아래 칸에 넣었다. 규정대로 하자면 유실물 처리 대상도 아니고, 그냥 버려야 하는 물건이었다.
그런데 못 버렸다. 그 애 얼굴 때문에.
일주일 뒤에 왔다. 창구 앞에 서서 아무 말도 안 하길래 내가 물었다.
"확인하러 오셨어요?"
"…네."
"있어요. 그대로."
그 애가 고개를 끄덕이고 갔다.
그 다음 주에도 왔다. 그 다음 주에도. 매번 똑같았다. 있냐고 묻지도 않고 그냥 서 있다가, 내가 있다고 하면 끄덕이고 갔다.
여덟 번째쯤 왔을 때 내가 말했다.
"매주 올 거면 그냥 여기서 일해요. 사람 구하는데."
농담 반이었다. 그런데 그 애가 진짜로 이력서를 들고 왔다.
3년 동안 나는 그 물건이 뭔지 안 물어봤다.
저 친구는 내가 배려해서 안 묻는 줄 알 거다. 반은 맞다.
나머지 반은, 내가 이미 봤기 때문이다.
그날 밤 캐비닛에 넣기 전에 나는 그걸 봤다. 안 볼 수가 없었다. 물건을 보관하려면 상태를 확인해야 하니까. 그게 규정이고, 나는 열한 해 동안 그렇게 해왔다.
봤으니까 안다. 그게 뭔지, 왜 그 애가 가질 수도 버릴 수도 없는지.
그리고 봤기 때문에 못 물어본다. 내가 물어보면 그 애가 대답을 해야 하고, 대답을 하면 그건 말이 되어버린다. 말이 되면 되돌릴 수가 없다.
그 애는 아직 그걸 말로 만들 준비가 안 됐다. 3년째.
요즘 저 친구가 이상하다.
원래도 물건을 오래 들여다보는 애였는데, 요즘은 사람 사정까지 알아맞히려 든다. 우산 두고 다니는 아저씨, 책 읽으러 오는 여학생, 도시락통 아주머니.
그게 다 잘 풀렸으니 망정이지.
지난주에는 열쇠 하나 가지고 며칠을 끙끙대더라. 이름표가 긁혔다고. 나는 처음부터 그냥 중고로 산 거겠거니 했다. 요즘 애들 당근에서 뭐든 사니까.
그런데 저 친구는 거기서 뭔가를 봤다.
자기 물건을 못 보니까 남의 물건에서 자꾸 자기를 찾는 거다.
지난달에 저 친구가 반지 하나를 넉 달째 보관하고 있었다. 이혼한 여자가 찾아간 그 반지.
그 여자가 나가고 나서 저 친구가 캐비닛을 열더라. 한참 서 있다가 닫았다.
나는 못 본 척했다.
그날 밤 대장 맨 뒤에 또 보류 연장이라고 적혀 있었다. 3년째 같은 글씨다. 처음 1년은 힘줘서 눌러 썼는데, 요즘은 흐릿하다.
나는 그게 좋은 신호인지 나쁜 신호인지 모르겠다.
한 가지는 말해둬야겠다.
저 친구가 대장 맨 뒤 페이지에 품명을 안 적으면 처분 목록에 안 올라간다고 믿고 있는데, 그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품명 없는 물건은 자동 처분 목록에 안 잡힌다. 그건 맞다. 전산이 품명 기준으로 목록을 뽑으니까.
그런데 캐비닛 정기 점검이 있다. 2년에 한 번. 그때는 사람이 직접 열어서 하나씩 대조한다.
지난 두 번은 내가 넘겼다. 점검 나온 사람한테 "이건 내가 관리하는 것"이라고 하고 넘어갔다.
다음 점검이 다음 달이다.
이번엔 내가 넘겨줄 수 없다. 이번 점검은 지점이 아니라 본사에서 나온다. 열한 해 일하면서 딱 두 번 있었던 일이다.
며칠 전에 슬쩍 말했다.
"자기 요즘 자꾸 사연 만들더라."
그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니다. 다음 달 점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못 했다. 그 말을 꺼내면 그 애가 결정을 해야 하니까. 3년 동안 안 한 결정을.
나는 그걸 재촉할 자격이 없다. 나는 그 물건이 뭔지 알지만, 그걸 3년 동안 못 놓는 마음이 어떤 건지는 모른다. 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오늘 아침에 출근했더니 캐비닛이 열려 있었다.
저 친구가 어제 마감하면서 닫는 걸 잊은 모양이다. 3년 동안 한 번도 없던 일이다.
나는 안을 들여다봤다.
맨 아래 칸에 그게 그대로 있었다. 3년 전 그날 밤 내가 넣어둔 그 자리, 그 방향 그대로.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는 뜻이다.
나는 캐비닛을 닫고, 오후 근무 인수인계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캐비닛 잠금 확인 요망.
그리고 그 아래에 한 줄 더 적었다가, 지웠다.
다음 달에 정기 점검 있음.
지운 자리가 표시가 났다. 볼펜이라 완전히 안 지워졌다.
저 친구가 보면 알아볼 것이다. 그 애는 원래 지워진 글자를 잘 알아보니까.
다음 화 — 「9화: 3년 전 11월」
이 소설은 창작이며, 등장하는 인물·장소·사건은 모두 지어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