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01 · 3분 읽기
※ 이 글은 창작 소설입니다. 1화 · 2화 · 3화 · 4화 · 5화 · 6화 · 7화 · 8화 · 9화 · 10화 · 11화
책은 12월 둘째 주에 나왔다.
서점 입구 매대에 쌓여 있었다. 표지에 그 사람의 얼굴이 있었다. 몇 해 전 사진이었다. 잉크 묻은 손은 안 나오게 찍혀 있었다.
나는 한 부를 집어 계산대로 갔다. 카드로 냈고, 봉투는 사양했다. 점원은 나를 몰랐다. 당연한 일이다.
집에 와서 첫 장부터 읽었다. 사백이십 쪽을 이틀에 걸쳐 읽었다.
우물 이야기는 3장에 있었다. 그 작가의 문장은 깨끗했다. 군더더기를 걷어내는 손이 좋은 사람이었다.
여덟 살 겨울. 외가. 언 우물. 미끄러진 아이.
두레박 줄은 삼줄이 되어 있었다. 언제 바뀌었는지 모른다. 수상 소감에서였는지, 인터뷰에서였는지, 그 작가의 손에서였는지.
그리고 그날 밤, 어머니가 말없이 우물에 널빤지를 덮는 장면으로 끝났다.
내 우물에는 없던 널빤지. 그 사람의 우물에는 있던 널빤지. 이야기는 이제 두 사람 것을 합쳐 만든 세 번째 우물을 갖고 있었다.
왼손이 물에 들어가는 대목은 모든 판본에 있다. 그 물이 차가웠다는 것만 어디에도 없다. 그건 한 번도 말해진 적이 없으니까.
내가 나오는 대목은 9장이었다.
확인서에서 읽은 그대로였다. 한 글자만 달랐다.
그는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늘 보리차였다.
내가 고친 자리다. 사백이십 쪽 중에 내가 쓴 문장은 그것 하나였다.
스무 해가 넉 장이었고, 넉 장은 전부 사실이었고, 나는 그 안에서 원고를 만지고 밤을 새우고 보리차를 마시는 사람이었다.
감사의 말은 맨 뒤에 있었다. 열일곱 명의 이름이 가나다순으로 적혀 있었다. 내 이름은 아홉 번째에 있었다.
책을 덮고 서랍을 열었다.
원고를 꺼냈다. 첫 장만 쓰인 것. 삼 년 전에 쓴 한 문단.
여덟 살 겨울에 나는 외가 우물에 빠질 뻔했다. 두레박을 건지려다 미끄러졌고, 왼손이 팔목까지 물에 들어갔다. 지나가던 사람은 없었다. 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아무도 묻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 잤다.
그 밑은 비어 있다. 삼 년 동안 비어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이 준 봉투를 열어, 세 번 멈춘 원고를 꺼내 옆에 놓았다. 네 번째 판본. 아니, 순서로 치면 이쪽이 먼저인가. 세다가 그만두었다.
볼펜을 들었다.
첫 문단을 다시 읽었다. 전부 사실이었다. 날짜도 장소도 순서도.
스무 해 동안 나는 남의 문장 앞에 단어를 놓아주는 일을 했다. 어떤 단어를 앞에 놓느냐로 뒤에 오는 것들의 무게가 정해진다는 걸, 그 일을 하면서 배웠고, 그 일을 하면서 저질렀다.
이번에는 내 문장이었다.
나는 다음 문장을 적었다.
무엇보다 물이 차가웠다.
「대필」 완결
1화부터 12화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 소설은 창작이며, 등장하는 인물·장소·사건은 모두 지어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