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필」 11화 — 우물

2026-08-31 · 6분 읽기

※ 이 글은 창작 소설입니다. 1화 · 2화 · 3화 · 4화 · 5화 · 6화 · 7화 · 8화 · 9화 · 10화


봉투의 글씨만 보고 알았다.

ㅅ을 갈매기처럼 벌려 쓰는 사람은 내가 아는 한 한 사람뿐이다.

안에는 편지가 아니라 쪽지가 들어 있었다. 찻집 이름과 날짜와 시간. 그 밑에 한 줄.

차는 시켜 두겠네.

찻집

이십 년 동안 다니던 집이었다. 원고를 넘기던 날마다 갔으니 쉰 번은 갔을 것이다.

그 사람은 안쪽 자리에 앉아 있었다. 오 년 만이었다.

탁자에 잔이 두 개 있었다. 그 사람 앞에는 늘 마시던 것, 내 자리에는 보리차.

확인서가 도착했다는 뜻이다.

"앉게."

나는 앉았다.

"그 밖에는 없습니다, 라." 그 사람이 말했다. "자네답게 썼더라."

오 년 사이에 그 사람은 늙어 있었다. 당연한 일인데 이상했다. 내 기억 속에서 그 사람은 오 년 동안 한 살도 먹지 않았으니까.

가운뎃손가락 첫 마디에 잉크가 묻어 있었다. 아직 손으로 쓴다는 뜻이다.

"잘 지냈나."

"네."

"남의 인생은 여전히 쓰고."

"네."

"자네 것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사람은 더 묻지 않고 찻잔을 들었다.

서류 봉투

그 사람이 옆자리에서 서류 봉투를 집어 내 앞에 놓았다.

"가져가게."

원고지였다. 낡은 것. 맨 위 장에 제목처럼 두 글자가 있었다.

우물

그 밑으로 서너 줄 쓰다가 만 원고가 세 부. 각각 날짜가 달랐다. 2011년 10월. 2011년 11월. 2012년 1월.

세 부 다 같은 자리에서 멈춰 있었다. 두 번째 문단이 시작되는 자리.

"세 번 썼는데 세 번 다 거기서 안 나가더군."

그 사람이 잔을 내려놓았다.

"그래서 자네한테 넘겼지. 그해 겨울에."

그해 겨울

그해 겨울을 나는 기억한다.

『겨울 우물』 마감이 다가오는데 표제작이 없었다. 산문집에 어린 시절이 하나는 있어야 한다고 편집부가 말했고, 그 사람은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마감 두 주 전에 나는 원고 하나를 끼워 넣었다.

여덟 살 겨울. 외가. 언 우물. 두레박을 건지려다 미끄러져서 왼손이 팔목까지 물에 들어간 아이. 지나가던 사람은 없었고, 아이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아무도 묻지 않았고, 저녁을 먹고 잤다.

내 여덟 살이었다.

그 사람은 그 원고를 읽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음 날 교정지에 그 산문이 표제작으로 들어가 있었다.

우리는 그 이야기를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십오 년 동안.

몰랐다는 말

"나는 처음에 자네 것인 줄 몰랐어."

그 사람이 창밖을 보면서 말했다.

"원고가 왔길래, 내가 어디서 한 얘기를 자네가 받아 적었나 했지. 나는 술자리에서 말이 많은 사람이니까."

"…"

"우물 있는 집에서 자란 것도 맞고. 우리 집 우물엔 겨울마다 널빤지를 덮었네. 어머니가 덮으셨지."

시상식에서 그 사람이 보탠 그 널빤지. 내 우물에는 없던 것.

"그게 자네 것인 줄 언제 아셨습니까."

그 사람은 한참 있다가 대답했다.

"언제부터 알았느냐고 물으면, 나도 순서를 몰라."

"…"

"어느 날부터는 그 우물가에 서 있으면 내 발이 시렸어. 기억이라는 게 그렇게 되더군. 여러 번 말하면 내 것이 돼. 자네도 그런 사람들 많이 봤을 텐데."

많이 봤다. 신문에 난 남의 일을 자기 일로 기억하던 노인을 봤고, 같은 날짜를 서른아홉 번 고쳐 쓴 남자를 봤다.

그 사람들과 이 사람이 다르다고 말할 근거를 나는 갖고 있지 않았다.

시상식 두 주 뒤

"그날 얘기를 해야겠지."

그 사람이 먼저 꺼냈다.

2021년 가을. 시상식 두 주 뒤. 그 사람의 작업실. 그 사람은 이렇게 말했었다. 다음 책에는 이름을 나란히 올리지.

나는 그 말을 듣고 그날 밤 사직 메일을 썼다.

"나는 주려고 했는데."

그 사람이 나를 봤다.

"자네는 그걸 계산서로 받았지."

"…수상 소감에서 우물 얘기를 하셨습니다. 널빤지까지 넣어서요. 그리고 두 주 뒤에 이름을 올리자고 하셨고요."

"그래서 안다고 생각했나. 알고서 값을 치르는 거라고."

"…아닙니까."

그 사람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 것이 대답이 아니라는 걸, 나는 이 일을 하면서 배웠다. 대답하지 않는 자리에는 여러 개가 산다.

회고록

"회고록은 왜 내십니까."

내가 물었다. 오 년 만에 처음으로 내가 먼저 물은 질문이었다.

"요즘 아침마다 어제를 의심하네."

그 사람이 잔을 두 손으로 감쌌다.

"내 기억이 통째로 남의 것 같은 날이 있어. 어느 게 살았던 거고 어느 게 썼던 건지."

"…"

"그래서 남이 쓰게 했지. 남이 쓰면, 적어도 남의 것인 줄은 알고 읽을 수 있으니까."

원본

"이건 왜 주십니까."

나는 봉투를 가리켰다. 세 번 멈춘 원고.

"12월에 책이 나오면 그 이야기의 판본이 셋이 되네. 내 수상 소감, 그 친구 문장, 그리고 책에 실린 원문."

그 사람이 봉투를 내 쪽으로 조금 더 밀었다.

"원본을 가진 사람이 부본도 가져야지."

원본이 어느 쪽인지 그 사람은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말했다.

"저는 자료를 오 년만 보관합니다."

"알아. 자네 규칙이지."

그 사람이 처음으로 웃었다.

"이건 자료가 아니야."

찻값

우리는 차를 다 마셨다. 그 사람은 요즘 읽는 책 얘기를 했고, 나는 요즘 쓰는 사람들 얘기를 했다. 이름은 서로 하나도 대지 않았다. 우리는 원래 그런 대화를 하던 사이였다.

일어설 때 내가 계산서를 집었다.

그 사람은 말리지 않았다. 코트를 입으면서 이렇게만 말했다.

"이십 년 만에 처음이네."

찻집을 나와서 그 사람은 왼쪽으로, 나는 오른쪽으로 갔다. 나는 한 번 돌아봤다. 그 사람은 돌아보지 않았다.

봉투는 겨드랑이에 끼고 있었다. 집까지 사십 분을 걸었다.


마지막 화 — 「12화: 다음 문장」

이 소설은 창작이며, 등장하는 인물·장소·사건은 모두 지어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