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30 · 5분 읽기
※ 이 글은 창작 소설입니다. 1화 · 2화 · 3화 · 4화 · 5화 · 6화 · 7화 · 8화 · 9화
11월 첫 주에 온 의뢰인이었다.
예순아홉. 마른 남자. 낡은 공책 한 권을 품에 안고 들어와서, 앉기도 전에 말했다.
"저를 나쁘게 써 주세요."
다들 좋게 써달라고 온다. 대놓고 말하지 않아도 그렇다. 지워달라고 하고, 줄여달라고 하고, 부드럽게 해달라고 한다.
나쁘게 써달라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어떤 일을 나쁘게 쓸까요."
"제가 사람을 죽였습니다."
나는 볼펜을 들지 않았다. 이런 문장 앞에서 뭔가를 적으면 사람은 입을 닫는다.
"…죽인 게 아니라 죽게 했습니다. 그게 더 나쁩니다."
공장 반장이었다. 밑에 젊은 직원이 하나 있었다.
1986년 5월, 그 직원이 작업 실수를 했다. 크지 않은 실수였다고 했다. 그런데 그는 그걸 위에 보고했다.
"안 해도 되는 보고였습니다. 제 선에서 덮을 수 있었어요."
직원은 두 달 뒤 해고됐다. 고향으로 내려갔고, 소식이 끊겼고, 십이 년 뒤에 죽었다는 말을 건너 들었다. 마흔둘이었다.
"그 보고서 한 장으로 제가 그 사람 인생을 끝냈습니다."
그가 공책을 내밀었다.
"여기 다 있습니다."
사십 년 된 공책이었다.
일기가 아니었다. 같은 날의 기록이었다. 1986년 5월 26일 하루를, 그는 매년 그날이 오면 다시 적었다. 서른아홉 번.
첫 기록은 1987년이었다.
1987. 보고서를 냈다. 그가 잘렸다. 감원 명단에 원래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 위로가 되지 않는다.
1999년.
1999. 내가 그를 지목했다. 그는 버티지 못했다.
2016년.
2016. 내가 그를 죽였다.
나는 첫 장으로 돌아갔다. 다시 읽었다.
감원 명단에 원래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 문장은 1987년에만 있었다. 이후 서른여덟 번의 기록 어디에도 다시 나오지 않았다.
나는 도서관에서 그 공장을 찾아봤다. 1986년 여름, 지역 신문에 기사가 있었다. 그 공장의 감원 계획. 삼백 명. 보고서가 올라가기 전날 날짜였다.
사망은 1998년, 부고에 병명이 있었다. 그가 떠난 지 십이 년 뒤의 병.
사실은 이랬다. 회사는 이미 자르기로 되어 있었고, 그의 보고서는 순서를 몇 주 당겼을지도 모르는 종이 한 장이었고, 죽음은 십이 년 뒤의 병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그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자기 손으로 적어놓았다. 사십 년 전에.
적어놓고, 잊었다. 아니, 지웠다. 매년 다시 쓰면서 한 문장씩 어둡게 고쳤다. 기억은 그렇게 성실하다.
나는 공책 첫 장을 펴서 그의 앞에 놓았다.
그는 오래 읽었다. 자기 글씨를 남의 글씨처럼 읽었다.
"…이건 내 글씨네요."
"네."
"이렇게 쓴 게 기억이 안 납니다."
"1987년입니다. 제일 가까운 기록이고요."
그가 공책에서 손을 뗐다.
"그러면, 제가 사십 년 동안 뭘 미워하고 산 겁니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건 내가 아는 종류의 질문이 아니었다.
"그래도 나쁘게 써 주세요."
한참 뒤에 그가 말했다.
"없는 죄를 쓰는 건 거짓말입니다."
"그럼 제 사십 년은 뭐가 됩니까."
그가 공책을 손바닥으로 눌렀다.
"죄가 작아지면, 이 사십 년이 우스운 게 됩니다. 나는 그게 더 무섭습니다."
죄는 부풀려져 있었고, 벌은 진짜였다. 사십 년 치 벌이 저 공책에 있었다. 죄를 원래 크기로 돌려놓으면 벌만 남는다. 이유 없는 벌은 벌이 아니라 그냥 고통이다.
그는 그걸 우습다고 표현했다. 나는 더 나은 단어를 찾지 못했다.
원고는 이렇게 만들었다.
사건은 날짜 순서대로 썼다. 보고서, 그 전날의 감원 기사, 두 달 뒤의 해고, 십이 년 뒤의 병. 형용사 없이.
그리고 그 뒤에 공책을 실었다. 서른아홉 번의 5월 26일을 전부, 원문 그대로. 맞춤법도 고치지 않았다.
한 사람이 한 일과, 한 사람이 산 벌을 나란히 놓았다. 저울은 넣지 않았다.
교정지를 받아 든 그가 물었다.
"1987년 것도 실립니까."
"네. 첫 장에요."
"…그건 빼면 안 됩니까."
감원 명단. 자기를 용서하는 문장. 그는 그걸 빼고 싶어 했다.
"둘 다 싣거나, 둘 다 안 싣거나입니다."
그가 나를 봤다. 어디서 들은 말인지 묻는 얼굴이 아니었다. 그냥 오래 봤다.
"…둘 다 싣죠."
책 제목은 그가 정했다.
『5월 26일』
표지에 다른 말은 안 넣었다. 그는 완성본을 받아 들고, 무게를 재듯 손에서 한 번 흔들어보고, 고개를 숙이고 갔다.
잘 갔는지는 모른다.
다음 화 — 「11화: 우물」
이 소설은 창작이며, 등장하는 인물·장소·사건은 모두 지어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