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필」 7화 — 대필 작가를 대필하다

2026-08-27 · 5분 읽기

※ 이 글은 창작 소설입니다. 1화 · 2화 · 3화 · 4화 · 5화 · 6화


메일은 세 줄이었다.

회고록을 집필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선생님이 그분과 오래 일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자료 조사차 한 시간만 뵐 수 있을까요.

발신인 이름 밑에 직함이 없었다. 대필 작가는 직함이 없다.

나는 답장을 두 번 지웠다가 세 번째에 보냈다.

네. 작업실로 오시지요.

그쪽 작가

서른 중반쯤의 여자였다. 가방에서 노트와 휴대폰을 꺼내고, 휴대폰을 탁자 가운데에 놓으면서 물었다.

"녹음해도 될까요?"

"네."

빨간 점이 켜졌다. 나는 십 년 넘게 그 점을 상대방 쪽에서 봤다. 이쪽에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편하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쓸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제가 가립니다."

내가 늘 하는 말이었다. 토씨까지 같았다.

사실들

"언제부터 함께 일하셨어요?"

"2001년 겨울부터 2021년 가을까지요."

"스무 해네요."

"네."

"그동안 그분 책이 열한 권 나왔고요."

"열한 권입니다."

"정확하시네요."

"직업병입니다."

그가 노트에 뭔가 적었다. 나는 그게 숫자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숫자는 녹음기가 잡는다. 노트에 적는 건 숫자 말고 다른 것이다. 나도 그렇게 한다.

"그 스무 해 동안 자서전 일도 같이 하셨고요."

"생활은 해야 하니까요."

"그분은 아셨어요?"

"아셨습니다."

어떤 일을 하셨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셨어요?"

나는 잠깐 창밖을 봤다.

"원고를 만졌습니다."

"만지셨다는 건."

"초고가 거칠게 나온 날에는 밤을 새우기도 했고요. 교정지는 끝까지 제가 봤습니다."

전부 사실이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나는 그 끄덕임을 안다. 받아들이는 끄덕임이 아니라 보류하는 끄덕임이다. 나도 그렇게 끄덕인다.

겨울 우물

"『겨울 우물』 작업에도 참여하셨지요."

"교정을 끝까지 봤습니다."

"그 책 좋아하세요?"

"…네."

"저도요. 표제작을 제일 좋아해요. 우물 이야기요."

"…"

"그 산문 때문에 이 일을 맡았어요. 그 사람을 쓰고 싶어서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노트에 또 뭔가 적었다.

한 시간

한 시간 동안 그는 서른 개쯤 물었고 나는 서른 개쯤 대답했다.

대답하면서 알았다. 나는 사실만 말하고 있었다. 한 마디도 지어내지 않았다. 날짜는 정확했고 숫자는 맞았다.

그리고 내 의뢰인들이 정확히 이렇게 말한다.

그가 노트를 덮으면서 말했다.

"이상하네요."

"뭐가요."

"한 시간 동안 전부 사실만 말씀하신 것 같은데, 아직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녹음이 꺼지고

그가 휴대폰을 집어 빨간 점을 껐다. 그리고 가방을 챙기다가, 챙기던 손을 멈추고 물었다.

"왜 그만두셨어요?"

녹음이 꺼진 다음의 질문. 나도 그 자리에 그 질문을 놓는다.

나는 침묵을 세는 버릇이 있다. 상대가 열을 셀 동안 기다려주면 대개 말이 나온다. 그는 열을 셌다. 나도 열까지 기다리는 사람이라서, 그가 세는 걸 알았다.

"…쓸 게 없어져서요."

그가 나를 봤다. 그리고 노트를 다시 펴서 그 말을 적었다. 녹음기는 꺼져 있었다.

나라도 적었을 것이다.

문 앞에서

"10월에 원고를 마감합니다. 12월 출간이라서요."

그가 신발을 신으면서 말했다.

"다음 달쯤 사실 확인 요청이 갈 겁니다. 선생님 부분도요."

"제 부분이 있습니까."

"있죠. 스무 해인데."

그가 문을 열다가 돌아봤다.

"오늘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

"네."

"녹음 끌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제일 중요한 말을 하시더라고요."

"…"

"저는 그런 분들 말을 제일 오래 봅니다."

문이 닫혔다.

의자

나는 한참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러다 일어나서, 그가 앉았던 자리로 건너가 앉아 봤다.

내 책상이 보였다. 녹음기 놓는 자리, 볼펜 통, 이백 권의 등이 꽂힌 책장. 십 년 넘게 이쪽을 등지고 살았다.

의자가 낮았다.

나는 그걸 여태 몰랐다.


다음 화 — 「8화: 갚은 사람」

이 소설은 창작이며, 등장하는 인물·장소·사건은 모두 지어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