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필」 4화 — 삼십 년 전 신문에 난 사람

2026-08-24 · 7분 읽기

※ 이 글은 창작 소설입니다. 1화 · 2화 · 3화


이번 건은 당사자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끝났다.

정확히는 대화가 없었던 게 아니라, 대화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그래서 종이만 봤다.

의뢰

일흔여덟. 퇴직 공무원. 아들이 의뢰했고 비용도 아들이 냈다.

"아버지가 요즘 같은 얘기를 반복하세요."

아들이 말했다.

"기억이 좀 흐려지셨어요. 그전에 남겨두려고요."

인터뷰를 해보니 상태가 짐작보다 나빴다. 어제 일은 기억 못 하고, 오래된 일은 아주 자세히 말했다. 다만 같은 이야기를 매번 조금씩 다르게 했다.

인명과 지명이 흔들렸다. 순서도 흔들렸다.

말로는 확인이 안 되는 건이었다.

반복되는 이야기

그런데 한 이야기만은 매번 똑같았다.

"내가 신문에 났었어."

"어떤 일로요?"

"불이 났는데, 애를 업고 나왔지."

날짜도 매번 같았다. 1991년 겨울. 장소도 같았다. 그가 근무하던 면사무소 옆 상가.

기억이 흐려진 사람이 매번 똑같이 말하는 이야기는 대개 사실이다. 흔들리는 건 흐려진 부분이고, 안 흔들리는 건 깊이 박힌 부분이다.

나는 그렇게 판단하고 신문을 찾았다.

신문

지역 신문 축쇄판이 도서관에 있었다.

1991년 12월. 있었다.

상가 화재… 공무원이 어린이 구해

기사는 짧았다. 화재가 났고, 인근 면사무소 직원이 세 살 아이를 업고 나왔고, 아이는 무사했다.

그런데 이름이 달랐다.

의뢰인의 이름이 아니었다.

세 가지 가능성

하나. 기억이 뒤섞였다. 남의 일을 자기 일로 기억하는 건 이 병에서 흔하다. 특히 여러 번 들은 이야기일수록 그렇다.

둘. 기사가 틀렸다. 지역 신문에서 이름 오기는 드물지 않다.

셋. 다른 사건이다. 같은 시기에 비슷한 일이 두 번 있었을 수도 있다.

나는 셋 다 확인해봤다.

확인

그해 겨울 그 지역 화재 기사를 전부 찾았다. 세 건이었다. 나머지 둘은 인명 사고가 없었다.

같은 사건이다.

기사에 난 이름을 찾아봤다. 같은 면사무소 직원이었고, 3년 뒤 다른 지역으로 옮겼고, 2008년에 사망했다.

실존 인물이다. 오기가 아니다.

그러면 첫 번째다. 의뢰인이 남의 일을 자기 일로 기억하는 것.

아들에게

"아버님이 말씀하시는 화재 건인데요."

"네."

"신문 기사를 찾았는데, 아버님 성함이 아니었습니다."

아들의 표정이 굳었다.

"…그럴 리가요."

"동료분 성함으로 나와 있습니다."

아들이 한참 말이 없다가 물었다.

"그럼 아버지가 지어낸 겁니까?"

"지어낸 게 아니라 섞이신 것 같습니다.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

"그 부분은 빼는 게 좋겠습니다."

아들이 원한 것

"넣어주시면 안 될까요."

나는 그를 봤다.

"아버지가 평생 자랑하신 이야기예요. 그거 하나로 사시는 분입니다."

"…"

"이제 다른 건 다 잊으셨는데, 그것만 남았어요."

그가 손을 모았다.

"어차피 손주들 보여줄 책입니다. 팔 것도 아니고요."

나는 어떻게 했나

여기서 나는 3화를 생각했다.

3화에서 나는 딸 편을 들었다. 뜯긴 자리를 사진으로 넣겠다고 했고, 계약이 깨졌다.

그때 의뢰인이 한 말이 계속 남아 있었다. 왜 자꾸 본인 생각을 넣습니까.

이번에는 넣지 말자고 생각했다.

기억이 흐려진 노인이 마지막으로 붙잡고 있는 이야기다. 이걸 빼는 게 누구에게 이로운가. 정확한 기록이 필요한 사람이 있나. 손주들이 읽고 감동하면 그만 아닌가.

나는 넣기로 했다.

원고

그리고 이렇게 썼다.

1991년 겨울, 면사무소 옆 상가에 불이 났다. 나는 안으로 들어가 아이를 업고 나왔다.

쓰고 나서 나는 그 문장을 오래 봤다.

이 문장은 거짓이다.

그런데 이 문장을 쓰는 나는 대필 작가다. 나는 그의 말을 옮기는 사람이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옮기는 것과 쓰는 것은 다른가.

다시 도서관

나는 그 주에 도서관에 다시 갔다.

왜 갔는지는 나도 잘 몰랐다. 이미 확인은 끝났고, 원고도 썼다.

기사를 다시 봤다. 그리고 그날 지면 전체를 봤다. 처음엔 기사만 보고 나왔었다.

같은 지면 아래쪽에 사진이 하나 있었다.

화재 현장 사진이었다. 소방차와 사람들.

사진

사진 설명에 이름이 없었다. 그냥 화재 현장이라고만 되어 있었다.

나는 그 사진을 확대해서 봤다.

사람들 뒤쪽에 담요를 두른 남자가 있었다. 얼굴은 흐릿했다. 그런데 그 남자가 안고 있는 게 아이였다.

기사에 난 사람은 사진 앞쪽에 서 있었다. 기자와 이야기하는 자세로.

아이를 안고 있는 사람은 뒤쪽 남자였다.

확인할 수 없는 것

여기서 멈춰야 한다는 걸 나는 안다.

사진 속 흐릿한 얼굴로 사람을 특정할 수는 없다. 담요를 두른 남자가 의뢰인이라는 근거는 없다. 아이를 안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구한 것도 아니다. 밖에서 받아 안았을 수도 있다.

나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했다.

그런데 나는 기사 하나로 아니라고 판단했었다.

기사에 이름이 없으면 아닌 것이다. 그게 내가 십 년 넘게 써온 방식이다. 종이에 남은 게 사실이고, 안 남은 건 없는 일이다.

2화에서 내가 뭐라고 썼는지 기억한다. 안 한 일은 기록에 안 남는다.

한 일도 안 남는다는 건 그때 안 썼다.

아들에게 다시

"저번에 말씀드린 화재 건 말인데요."

"넣어주시기로 하셨잖아요."

"네. 넣습니다."

"…그럼 왜."

"확실하지 않다는 말씀을 드리려고요."

나는 사진 복사본을 내밀었다.

"기사에 난 사람은 앞에 있고, 아이를 안고 있는 사람은 뒤에 있습니다. 누군지는 모릅니다."

아들이 사진을 오래 봤다.

"아버지일 수도 있다는 겁니까?"

"모릅니다."

"…"

"제가 드릴 수 있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그가 고른 것

아들은 삼 주 뒤에 연락을 줬다.

"그냥 아버지가 말씀하신 대로 써주세요."

"…네."

"근데 그 사진은 빼주세요."

"왜요?"

"아버지가 보시면 헷갈리실 것 같아서요."

내가 쓴 것

원고에는 이렇게 들어갔다.

1991년 겨울, 면사무소 옆 상가에 불이 났다. 나는 안으로 들어가 아이를 업고 나왔다.

처음에 쓴 그대로다. 한 글자도 안 바꿨다.

그런데 이번엔 다르게 느껴졌다.

3화에서 나는 못 본 열 장을 근거로 판단했다. 이번엔 못 본 것을 근거로 판단하지 않았다. 대신 모른다고 말하고 그대로 썼다.

그게 나아진 건지 나는 모른다.

아무것도 판단하지 않는 건 겸손이 아니라 회피일 수도 있다.

12월

그날 밤 캐비닛을 열었다.

첫 장만 쓰인 원고.

거기 적힌 것도 내 기억이다. 삼십 년 전 일도 아니고 겨우 몇 년 전 일인데, 나는 그날 일을 몇 번이나 다르게 기억한다.

내가 쓰면 그건 내 기억이고, 그 사람이 쓰면 그 사람 기억이다.

둘 중 어느 쪽이 사실인지는 아무 데도 안 남아 있다.

신문에도 안 났다.


다음 화 — 「5화: 원고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뢰인」

이 소설은 창작이며, 등장하는 인물·장소·사건은 모두 지어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