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23 · 11분 읽기
앞의 두 건에서 나는 의뢰인을 나쁘게 봤다가 틀렸다.
그래서 이번엔 조심했다. 사람을 함부로 의심하지 말자고. 십 년 넘게 이 일을 하면서 배운 게 그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이번엔 반대로 작동했다.
의뢰인은 예순한 살 남자였다. 아내가 작년에 죽었다고 했다.
"집사람이 글을 썼습니다."
그가 노트 여덟 권을 꺼냈다.
"삼십 년을 썼어요. 아무한테도 안 보여주고."
나는 노트를 넘겨봤다. 손글씨였다. 일기라기보다 짧은 산문에 가까웠다. 문장이 좋았다. 이 일을 하면서 남의 글을 많이 보는데, 이건 달랐다.
"책으로 만들어드리고 싶습니다."
"…유고집이시군요."
"네. 딸한테 한 권 주고 싶어서요."
이런 의뢰는 대필 작가에게 좋은 일이다.
원고가 이미 있으니 창작할 게 없다. 나는 순서를 잡고, 오탈자를 고치고, 앞뒤로 짧은 해설을 붙이면 된다. 고인의 문장을 건드리지 않는 게 원칙이다.
무엇보다 이건 선의로만 설명되는 일이다.
죽은 사람의 글을 책으로 만드는 데 돈이 든다. 팔릴 책도 아니다. 그런데도 하겠다는 건 남기고 싶다는 뜻이고, 남기고 싶다는 건 사랑했다는 뜻이다.
나는 그렇게 읽었다.
세 번째 미팅에서 나는 딸 이야기를 꺼냈다.
"따님도 원고 보셨어요?"
"…아뇨."
"보여드리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어머니 글이니까요."
"딸은 반대합니다."
"…"
"엄마 글을 왜 남한테 보여주냐고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흔한 일이다.
유고집은 유족 사이에서 자주 갈린다. 남기자는 쪽과 그냥 두자는 쪽. 어느 쪽도 틀리지 않다.
"따님 동의는 받으셔야 합니다. 저작권이 상속되니까요."
"제가 설득하겠습니다."
딸이 반대하는 이유를 나는 이렇게 짐작했다.
어머니가 아무한테도 안 보여준 글이다. 그걸 책으로 만들면 어머니가 원치 않았을 수도 있다. 딸은 그걸 걱정하는 것이다.
아버지는 남기고 싶고, 딸은 지키고 싶다. 둘 다 어머니를 위한 마음이다.
나는 이 구도가 마음에 들었다. 잘 정리해서 쓰면 좋은 서문이 나올 것 같았다.
나는 이미 이야기를 만들고 있었다.
노트 여덟 권을 타이핑하는 데 삼 주가 걸렸다.
작업을 하다 보면 글쓴이가 보인다. 이 사람은 계절을 자주 썼다. 그리고 문장 끝을 자주 잘랐다. 다 쓰지 않고 멈추는 버릇이 있었다.
1990년대 초반 노트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오늘은 아무 데도 가지 않았다. 갈 수 있는데도.
나는 이 문장이 좋아서 표시해뒀다.
그런데 정리하면서 이상한 걸 하나 발견했다.
노트 여덟 권 중 세 번째 권이 1994년 3월에서 끊긴다. 그리고 네 번째 권이 1996년 11월에서 시작한다.
2년 8개월이 빈다.
나는 의뢰인에게 물었다.
"혹시 노트가 더 있을까요? 94년에서 96년 사이가 비는데요."
"…없을 겁니다."
"그때 안 쓰셨을까요?"
"그랬겠죠. 애 키우느라 바빴을 때니까."
나는 1화의 어르신을 떠올렸다. 사진 뒷면이 비어 있던 3년.
그때 나는 "숨긴 것"이라고 읽었다가 틀렸다. 쓸 사람이 없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이번엔 그렇게 읽지 않기로 했다. 안 쓴 시기가 있을 수 있다. 사람이 삼십 년을 하루도 안 빠지고 쓰지는 않는다.
같은 실수를 두 번 하지 않으려고, 나는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았다.
이게 이번 실수였다.
네 번째 권 첫 장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다시 쓴다. 이번에는 숨길 데를 정해두고 쓴다.
나는 이 문장을 그냥 지나쳤다. 삼십 년을 아무한테도 안 보여준 사람이니 그런 표현을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몇 장 뒤에 이런 게 있었다.
그이가 세 번째 권을 봤다. 아무 말도 안 했다. 그게 더 무섭다.
나는 세 번째 권을 다시 꺼냈다.
1994년 3월에서 끝난다. 마지막 장을 봤다.
마지막 장 다음이 뜯겨 있었다.
노트 제본을 봤다. 실로 꿰맨 노트인데, 뜯긴 자리에 종이 조각이 남아 있었다. 여러 장이었다. 세어보니 열 장 넘게 뜯겼다.
나는 그 조각들을 봤다. 글씨 끝이 조금씩 남아 있었다.
그래서 나머지 일곱 권도 전부 확인했다.
첫 번째, 두 번째 권은 멀쩡했다.
네 번째 권부터 여덟 번째 권까지도 멀쩡했다.
세 번째 권만 뜯겨 있었다.
그리고 그 뜯긴 자리가 정확히 2년 8개월 공백의 시작점이었다.
"세 번째 노트 뒷부분이 뜯겨 있던데요."
의뢰인의 표정이 변했다.
"…그래요?"
"열 장 넘게요."
"집사람이 그랬겠죠. 마음에 안 들면 찢는 사람이었어요."
나는 그 말을 받아 적었다. 그리고 그날 밤 노트를 다시 봤다.
찢은 자리를 보면 방향이 나온다.
종이를 찢을 때 힘이 들어간 쪽에 결이 남는다. 안쪽에서 바깥으로 뜯으면 결이 바깥으로 눕고, 반대면 반대로 눕는다.
세 번째 권의 뜯긴 자리는 바깥에서 안쪽으로 눕혀져 있었다.
노트를 자기 앞에 놓고 찢는 사람은 이렇게 안 된다. 이건 노트를 반대편에서 잡고 뜯은 자국이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약하다. 자세를 바꿔 찢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하나가 더 있었다.
뜯긴 조각 중 하나에 글자 끄트머리가 남아 있었다.
…겠다고 했다.
파란 볼펜이었다.
세 번째 권 전체가 검은 볼펜이었다. 나머지 일곱 권도 전부 검은색이었다. 삼십 년 동안 한 번도 안 바뀌었다.
뜯긴 부분만 파란색이었다.
같은 사람이 쓴 게 아닐 수도 있다.
아니, 더 정확히는 — 그 부분에 다른 사람이 뭔가 썼을 수 있다. 그리고 그게 뜯겨 나갔다.
나는 여기서 멈춰야 했다. 이건 내 일이 아니다. 나는 원고를 정리하는 사람이지 조사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네 번째 권 첫 장이 계속 걸렸다.
다시 쓴다. 이번에는 숨길 데를 정해두고 쓴다.
나는 딸에게 연락했다.
이건 절차상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저작권 상속인 동의가 필요하니까. 다만 나는 동의를 받으려고 연락한 게 아니었다.
딸은 만나기를 거절했다. 대신 전화로 물었다.
"아버지가 뭐라고 하셨어요?"
"어머님 글을 책으로 만들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
"따님이 반대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전화 너머에서 한참 소리가 없었다.
"그 노트요."
"네."
"세 번째 거, 뒤에 뜯겨 있죠."
"제가 뜯었어요."
나는 볼펜을 놓았다.
"…왜요."
"엄마 죽고 나서 아빠가 노트를 다 읽었어요. 그러고 나서 저한테 유고집 얘기를 꺼냈고요."
"…"
"저는 그 전에 읽었어요. 엄마 병원에 있을 때."
딸이 잠깐 말을 멈췄다.
"거기 아빠가 쓴 게 있었어요. 엄마 노트에다가."
"1994년에요. 엄마가 뭘 썼는데, 그 밑에 아빠가 답을 써놨더라고요. 파란 볼펜으로."
"…뭐라고요."
"안 알려드릴 거예요."
"…"
"그거 읽고 엄마가 2년 넘게 아무것도 안 썼어요. 그리고 다시 쓸 때 첫 줄이 뭔지 아세요?"
나는 알고 있었다.
다시 쓴다. 이번에는 숨길 데를 정해두고 쓴다.
"엄마 책 내는 거 반대 안 해요. 엄마 글 좋아요."
"…"
"근데 아빠가 그걸 자기 이름으로 엮는 건 못 보겠어요."
딸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흔들렸다.
"엄마가 삼십 년을 아무한테도 안 보여준 이유가 그 사람인데요."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계약서를 봤다.
의뢰인은 나에게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
아내가 글을 썼다. 사실이다. 삼십 년을 아무한테도 안 보여줬다. 사실이다. 책으로 만들어 딸에게 주고 싶다. 이것도 아마 사실일 것이다.
전부 사실인데 전부 다르다.
2화에서 내가 배운 게 그거였는데, 나는 그걸 이번에도 못 알아봤다. 아니, 못 알아본 게 아니다.
알아보지 않기로 했던 것이다.
앞의 두 건에서 의뢰인을 나쁘게 봤다가 틀렸으니까, 이번엔 좋게 보기로 했다. 그게 배운 거라고 생각했다.
의심을 안 하는 건 배운 게 아니다. 방향만 바꾼 것이다.
며칠 뒤 의뢰인이 물었다.
"딸하고 통화하셨다면서요."
"…네."
"뭐라고 하던가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작가님."
"네."
"저는 그 책을 내야 합니다."
그가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집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딸은 그걸로만 알고 있어요. 뜯긴 그 부분으로만."
"…"
"삼십 년 중에 열 장입니다. 나머지 이백 장에는 다른 얘기도 있어요."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다.
나는 여덟 권을 다 읽었다. 그 안에 좋은 날도 있었다. 남편 이야기가 나쁘게만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건 이런 문제다.
삼십 년에서 열 장을 빼면 거짓말인가.
2화에서 나는 회장에게 둘 다 쓰라고 했다. 하나만은 안 된다고.
그런데 이번엔 그 열 장이 없다. 딸이 뜯었고, 내용도 안 알려준다. 쓸 수가 없다.
없는 걸 어떻게 쓰나.
나는 원고를 이렇게 만들었다.
노트 순서대로 실었다. 세 번째 권 마지막에 뜯긴 자리를 사진으로 넣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한 줄만 적었다.
이 부분은 유족의 뜻에 따라 실리지 않았다.
의뢰인이 그 페이지를 보고 오래 있었다.
"이건 빼시죠."
"안 됩니다."
"…"
"이게 없으면 삼십 년이 매끄러워집니다. 그럼 그건 사모님 글이 아니라 회장님이 원하시는 사모님이 됩니다."
그는 계약을 해지했다.
위약금은 규정대로 절반만 받았다. 원고는 넘기지 않았고, 타이핑한 파일은 그 앞에서 지웠다.
노트 여덟 권도 돌려드렸다.
"작가님은 남의 인생 쓰는 사람 아닙니까."
문을 나서면서 그가 말했다.
"그런데 왜 자꾸 본인 생각을 넣습니까."
그 말이 맞아서다.
나는 이 일에 규정이 없다고 1화에서 썼다. 그래서 매번 내가 정한다고.
그런데 매번 내가 정한다는 건, 매번 내가 옳다고 믿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번 건에서 내가 옳았는지 나는 모른다. 딸이 옳은지도 모른다. 열 장에 뭐가 쓰여 있었는지 나는 끝내 못 봤다.
나는 못 본 것을 근거로 판단했다.
집에 와서 나는 캐비닛을 열었다.
첫 장만 쓰인 원고.
12월까지 석 달 반 남았다.
그 사람은 지금 다른 작가에게 자기 이야기를 말하고 있을 것이다. 전부 사실인 말들을. 그리고 그 작가는 그걸 받아 적을 것이다. 나처럼 뜯긴 자리를 찾아보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의 노트에서 열 장을 뜯은 사람이 누구인지 안다.
나다.
다음 화 — 「4화: 삼십 년 전 신문에 난 사람」
이 소설은 창작이며, 등장하는 인물·장소·사건은 모두 지어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