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22 · 12분 읽기
※ 이 글은 창작 소설입니다. 1화
대필에는 규정이 없다.
의사에게는 진료 지침이 있고 변호사에게는 윤리 규정이 있다. 대필 작가에게는 그런 게 없다. 협회도 없고 자격증도 없다.
그래서 매번 내가 정한다. 어디까지 써주고 어디부터 안 쓸지.
이 이야기는 내가 정하지 못한 이야기다.
일흔넷. 중소기업 회장. 정확히는 전 회장이고, 지금은 아들이 대표다.
사무실이 아니라 호텔 라운지에서 만나자고 했다. 첫 미팅에서 그는 자료를 안 가져왔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자료는 회사에서 다 보내드릴 겁니다."
"네."
"그리고 한 가지."
그가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이 사람은 안 나왔으면 합니다."
그가 종이에 이름을 적어서 밀었다.
세 글자였다.
"어떤 분이시죠?"
"옛날에 같이 일하던 사람입니다."
"…"
"오래전 일이고, 지금은 연락도 안 합니다. 굳이 책에 나올 이유가 없어요."
나는 그 종이를 접어서 넣었다.
이런 요구는 드물지 않다. 자서전에서 사람을 빼달라는 건 자주 있는 일이다. 이혼한 배우자, 사이가 틀어진 형제, 배신한 부하 직원.
대개는 그냥 안 쓰면 된다. 안 쓴다고 거짓말이 되는 건 아니니까. 자서전은 판결문이 아니다.
그런데 이 건은 좀 달랐다.
회사에서 자료가 왔다. 상자 세 개.
창업기부터 있었다. 사업자등록증 사본, 초기 계약서, 신문 스크랩, 사보, 사진첩.
나는 연도순으로 정리하다가 그 이름을 만났다.
1983년 법인 등기부등본. 공동대표 두 명.
한 명은 의뢰인이었고, 다른 한 명이 그 세 글자였다.
나는 자료를 더 봤다.
1983년 창업. 1984년 첫 공장. 1987년 수출 시작. 1991년까지 모든 문서에 두 사람 이름이 나란히 있었다.
사보 창간호에는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이 있었다. 공장 앞에서, 작업복 차림으로.
1992년 등기부에서 그 이름이 빠진다. 이후 자료에는 한 번도 안 나온다.
그러니까 회사의 첫 9년은 두 사람이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의뢰인은 그 9년에서 한 사람을 빼달라고 했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한 사람을 안 쓰는 건 쉽다. 언급을 안 하면 된다.
그런데 공동 창업자를 안 쓰면 다른 문장들이 전부 거짓말이 된다.
"나는 1983년에 회사를 세웠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문장만 있고 동업자가 없으면, 읽는 사람은 그가 혼자 세웠다고 이해한다.
없는 걸 안 쓰는 게 아니라, 있는 걸 안 씀으로써 없는 걸 만드는 것이다.
나는 이 차이를 십 년 넘게 붙잡고 있다. 대필 작가가 하는 일이 정확히 그 경계에 있으니까.
"자료를 보다가 궁금한 게 있어서요."
"말씀하세요."
"1983년 등기부에 공동대표가 두 분이시던데요."
그의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 이 질문을 예상했던 것 같았다.
"네."
"그럼 창업 부분을 어떻게 쓸지 여쭤보려고요."
"제가 세웠다고 쓰시면 됩니다."
"…"
"자금은 제가 댔습니다. 그 사람은 기술만 있었고요."
나는 그 말을 확인해봤다.
초기 계약서를 보면 출자금 비율이 나온다. 6대 4였다. 의뢰인이 6.
"자금은 제가 댔습니다"는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다. 더 많이 댄 건 맞다.
그런데 4는 적은 돈이 아니다. 1983년 기준으로 그 정도면 집 한 채다.
말은 사실인데 인상은 사실이 아니다.
대필에서 제일 자주 만나는 형태가 이거다. 의뢰인들은 거의 거짓말을 안 한다. 대신 강조와 생략으로 다른 그림을 만든다. 그리고 그게 거짓말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건 매번 내 몫이 된다.
나는 그 사람을 찾아봤다.
의뢰인 몰래 한 건 아니다. 대필 작업에서 관계자 확인은 정상 절차다. 다만 나는 그가 왜 빠졌는지가 궁금했고, 그건 정상 절차보다 조금 더 나간 호기심이었다.
1992년 지역 신문에 짧은 기사가 있었다.
○○정밀 공장 화재… 인명피해 없어
그리고 그 다음 달, 등기부에서 그의 이름이 빠졌다.
나는 여기서 이야기를 하나 만들었다. 화재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거나, 아니면 의뢰인이 그를 밀어냈거나.
후자라면 지우려는 이유가 설명된다. 밀어낸 사람은 밀려난 사람을 기록에 남기고 싶지 않다.
"화재가 있었더군요. 1992년에."
"…네."
"그 뒤에 공동대표에서 빠지셨고요."
그가 처음으로 나를 오래 봤다.
"작가님."
"네."
"제가 그 사람을 밀어냈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다들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화재 때 그 사람이 공장에 있었습니다."
"…"
"불이 시작될 때 안에 사람이 셋 있었어요. 그 사람이 다 끌어냈습니다."
그가 커피를 밀어놓았다.
"본인은 마지막에 나왔고요. 다리를 크게 다쳤습니다."
"…그러면."
"보상을 해야 하는데, 회사에 돈이 없었어요. 그때 부도 직전이었으니까."
그가 잠깐 말을 멈췄다.
"그 사람이 지분을 넘기고 나갔습니다. 그 돈으로 다친 직원 셋 치료비를 냈어요."
믿지 않았다는 게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믿을 근거가 없었다는 쪽이 맞다.
나는 앞에서 신문 기사로 내 가설을 검증했다. 그런데 그 가설을 뒤집는 이야기를 당사자 입에서 듣고 그냥 받아들이면, 나는 검증을 한 게 아니라 내가 듣고 싶은 쪽만 검증한 것이 된다.
밀어낸 사람도 똑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오히려 밀어낸 사람일수록 그렇게 말한다.
그래서 나는 자료를 다시 봤다.
1992년 사보가 상자에 있었다. 화재 두 달 뒤 호.
거기 사내 공지가 하나 있었다.
금번 화재로 부상한 직원 3명의 치료비 전액은 회사가 부담합니다.
회사가 부담한다고 되어 있다. 의뢰인 말과 다르다.
나는 그 아래를 더 봤다. 같은 호 뒤쪽에 결산 요약이 실려 있었다. 그해 특별손실 항목에 금액이 하나 잡혀 있었고, 적요란은 임원 출자금 반환이었다.
치료비를 회사가 낸 게 맞다. 그 돈의 출처가 지분 반환금이었을 뿐이다.
사보에는 그렇게 쓰지 않았다. 회사가 냈다고만 썼다. 그편이 회사에 좋으니까.
그리고 나는 뒷장에서 인사 발령란을 봤다.
○○○ 공동대표 사임. 1992.7.
그 옆에 짧은 문구가 붙어 있었다.
일신상의 사유.
일신상의 사유는 회사가 사람을 내보낼 때도 쓰고, 사람이 스스로 나갈 때도 쓴다. 이 네 글자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런데 같은 지면 아래쪽에 사진이 하나 있었다. 사원 체육대회. 1992년 9월.
거기 그 사람이 있었다.
사임 두 달 뒤인데 회사 체육대회 사진에 찍혀 있었다. 목발을 짚고, 사람들 가운데에.
밀려난 사람은 두 달 뒤 체육대회에 안 온다. 와도 가운데 서지 않는다.
의뢰인의 말은 맞았다.
다만 나는 그 말을 믿어서 맞다고 한 게 아니라, 사보 세 장에서 확인해서 맞다고 했다.
이 차이가 내 일에서는 전부다. 대필 작가가 의뢰인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그건 받아쓰기다.
그런데 사보로 확인한 건 그 사람이 스스로 나갔다는 것까지다.
의뢰인이 안 말렸다는 건 끝내 확인할 수 없었다.
안 한 일은 기록에 안 남는다. 말리지 않은 회의는 회의록에 없고, 내놓지 않은 지분은 등기부에 없다. 사보 백 권을 뒤져도 그가 그때 무슨 말을 삼켰는지는 안 나온다.
이 책에서 제일 중요한 문장이 그것인데, 그것만 물증이 없다.
나는 그걸 의뢰인 입에서 들었고, 그대로 썼다.
그러니 이 회고록에서 검증된 건 곁가지고, 핵심은 그의 말이다. 내가 방금 받아쓰기라고 부른 것.
다만 그가 자기에게 불리한 쪽으로 말했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사람은 없는 죄를 지어내지 않는다.
내가 기댈 수 있는 건 거기까지였다.
"…그럼 왜 안 쓰려고 하세요."
이번엔 그가 대답하지 않았다.
한참 있다가 말했다.
"제가 안 말렸습니다."
"…"
"말릴 수 있었어요. 제 지분을 내놓을 수도 있었고요. 그런데 안 했습니다."
그가 손등을 봤다.
"그 뒤로 회사가 살았고, 저는 삼십 년을 더 했고요."
나는 그제야 이해했다.
그는 그 사람을 나쁘게 그리려고 지우려는 게 아니었다. 자기가 어떻게 보일지 때문이었다.
그 사람을 쓰면, 그 사람이 한 일을 써야 한다. 그 사람이 한 일을 쓰면, 그때 자기가 안 한 일이 같이 드러난다.
지우려는 건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옆에 서 있던 자기 자신이었다.
나는 이렇게 제안했다.
"그분 이야기를 쓰겠습니다. 대신 회장님이 안 말리셨다는 것도 쓰겠습니다."
"…"
"둘 다 쓰거나, 둘 다 안 쓰거나입니다. 하나만은 안 됩니다."
그가 나를 봤다.
"그러면 제가 나쁜 사람이 되는데요."
"네."
"…"
"그런데 지금 요구하신 대로 쓰면, 그분이 없는 사람이 됩니다."
그는 삼 주 뒤에 연락을 줬다.
"둘 다 쓰시죠."
"…네."
"대신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그 사람한테 먼저 보여주고 싶습니다. 책 나오기 전에."
나는 그 부분을 썼다.
두 사람이 공장 앞에서 찍은 사진을 넣었다. 사보 창간호에 있던 것.
그리고 이렇게 썼다.
그가 지분을 정리하고 나갈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붙잡을 수 있었는데 붙잡지 않았다. 회사는 그 돈으로 살아났고 나는 삼십 년을 더 일했다. 이 책에서 그 이야기를 빼려고 했던 것이 부끄럽다.
의뢰인이 검토하고 딱 한 군데를 고쳤다.
부끄럽다를 부끄러웠다로.
"왜 바꾸셨어요?"
"지금도 부끄러우면, 안 쓰겠다고 했겠죠."
이 이야기가 잘 끝난 것처럼 보이겠지만, 나는 아직도 이게 맞았는지 모른다.
내가 한 건 의뢰인을 설득한 것이다. 대필 작가가 의뢰인을 설득해도 되는가.
나는 그의 인생을 대신 쓰는 사람이지 심판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가 지워달라고 하면 지우는 게 내 일일 수도 있다. 자서전은 원래 그런 물건이니까. 누구도 자기 자서전에서 나쁜 사람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지우지 않았다.
내가 그러고 싶어서였다.
집에 와서 나는 출판사 메일에 답장을 썼다.
아는 분 맞습니다. 다만 제가 도울 입장은 아닌 것 같습니다.
보내고 나서 한 문장을 더 쓸까 하다가 지웠다.
그분 원고에 제 이야기가 나오면 미리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이건 물어보면 안 되는 것이다. 다른 작가가 맡은 작업에 대해 그런 걸 묻는 건 업계에서 하는 짓이 아니다.
무엇보다, 물어봐서 안다고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나는 오늘 의뢰인에게 둘 다 쓰라고 했다.
그 사람도 지금 나에 대해 같은 결정을 하고 있을 것이다. 쓸지 말지, 쓴다면 어디까지.
그리고 나는 그 결정에 대해 아무 말도 할 자격이 없다. 오늘 내가 한 일이 정확히 그거였으니까 — 남의 인생에 누가 들어가고 누가 빠질지를 내가 정했다.
넉 달 뒤에는 반대편에 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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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창작이며, 등장하는 인물·장소·사건은 모두 지어낸 것입니다.